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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르포] "직접 와보소! 어렵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아이라예"

옥포, 아주, 고현동 일대...여전히 불야성 "손님 줄어든 건 사실"
작업복 차림 직원들 삼삼오오 모여 저마다 "화이팅"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등록 : 2016-05-24 06:00

▲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의 출근길. 지역 상가 및 주민들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 거제시. 우리나라 최대 조선소인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위치한 곳. 점심시간이 되자 같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와 어느새 조선소 인근 식당들은 직원들로 북적거렸다. 이른 불볕더위에 맛집으로 소문난 밀면집에는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 저녁 6시. 시내는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근로자와 오토바이, 자동차로 넘쳐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도 봤던 노동자들이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아주동, 옥포, 고현일대 술집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자정이 넘도록 술집과 음식점은 불을 밝혔다.


[거제=박상효 기자] 18일 밤 10시 거제시 상권 일대는 조용하기만 했던 낮과 달리 네온사인이 하나둘 켜지더니 술집과 밥집은 삼삼오오 근로자들로 자리를 채워 나갔다. 여전히 네온사인과 화려한 조명등이 넘치는 이곳은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을 정도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식당과 술집들은 간간이 빈자리가 있기는 했지만 손님들로 북적댔다. 대부분 조선소 직원으로 보이는 손님들은 왁자지껄 술잔을 돌리고 저마다 공장(회사)이야기에 한창이다.

"화이팅! 잘하자!" 옆 테이블에 회식을 하는 듯한 조선소 직원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저마다 회사가 잘 되길 기원하는 건배가 이어졌다.

거제 중심가와 아주동, 장평동 일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주동에는 대우조선해양, 장평동에는 삼성중공업이 있다.

총 면적 402.01㎢. 인구는 25만6894명,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

한 때 거제에서는 '돈 자랑 하지말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현재 우리나라 조선업은 창사 이래 최대적자를 기록하면서 구조조정 여파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7, 18일 이틀동안 동남권 경제벨트 중 우리나라 조선업계의 심장인 창원, 통영, 사천, 거제 등 를 찾은 기자는 두가지에 당황했다.

최근 여러 언론이 너도나도 거제를 다녀와 조선업계가 어려워 거제가 '죽은 도시'고, 상권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소개했지만 직접 현장에서 눈으로 본 거제는 여전히 분주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동인구수가 많이 줄고 경제침체로 다소 위축되기는 했으나 거제가 조선소의 메카인 것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20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복집 식당 아주머니는 "기자 양반, 와이카노! 요즘 경기가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많은 조선소 직원들이 찾고 있다. 보면 알꺼아이가,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정도는 아이다."며 "언론에서 안된다 안된다카면 더 안되는 기다"며 토로했다.

이어 최근 특히, 서울 기자들에게 불만을 제기했다.

횟집 사장님은 "이봐, 난 신문은 안보지만 이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쪽 기자들이 내려와서 불꺼지고 원래 잘 안되는 가게만 찍고 올라갔다고 하던데...여기 맛집을 돌아다녀봐. 유명한 곳 말이야. 여전히 장사 잘돼. 물론, 예전처럼 잘 되지는 않아. 경제도 사이클이 있는거지"

옥포에서 10년째 바를 운영하는 50대 사장도 "1년전부터 조선소 직원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고 함께 아파하고 있다"면서 "흥청망청 놀던 예전과 달리 2, 3차를 지양하는 추세이지만 지갑이 얇아졌다고 해서 연봉 8천만원이 넘는 대기업 직원들이 소주 한잔 먹을 돈이 없어 거제 상권이 망하겠냐"며 "거제가 커지면서 아주동이나 신 시가지로 상권이 분산된 것도 고려해야한다"고 밝혔다.

점점 어려워 질 것이라는 불안감은 다들 있지만 아직은 거제가 살만한 동네라고 상가 번영회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공영 주차장을 관리하는 60대 관리원은 "예전처럼 주차 공간이 없어서 기다릴 정도는 아니지만 목, 금 저녁이나 주말에는 주차장이 거의 빈 곳이 없을 정도로 차가 아직 많은 편"이라며 "조선소 직원들이 어렵다는 소리는 듣고 있다. 이럴때 일 수록 더욱 힘내서 다시 옛 영광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하나는 조선소 직원들의 표정이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나 통영의 성동조선소 야드를 한 바퀴 돌면서 만나는 직원들 어느 한명에도 구긴살은 없었다. 오히려 곳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는 무리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는 부장은 "최근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많은 직원들이 나가고 또 다시 구조조정을 예고한 터라 직원들이 많이 불안하고 회사가 어려운 것 사실"이라면서도 "아직 2년치 수주잔량이 남아있고 몇십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월급 한번 밀린 적 없다"고 말했다.

▲ 조선소 인근 식당.점심시간에도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거제 시내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작업복 차림 노동자들. 이들 대부분은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의 회사마크가 찍힌 유니폼을 퇴근 후에도 아무렇지 않게 입고 다닌다. 이들이 입고 입는 것은 단순한 작업복이 아니라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에 근무한다는 자랑이요, 국가 산업을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 그 자체다.

최근 어려움 속에서도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의 양대 조선소는 아직 쉴 여유가 없다. 밀린 수주량을 소화해내려니 작업 일정은 쉴 틈 없이 빡빡하다. 오히려 일손이 부족한 지경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올해 나갈 물량과 내년까지 인도할 선박 때문에 일손이 많이 필요한데, 조선소가 어렵다고 하니 점점 직원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조선소는 일의 특성상 숙련공이 필요한데, 어렵다고만 하니까 다들 오지 않으려고 하니 충청도까지 가서 사람을 구해와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거제시 인구는 양대 조선소의 부흥으로 26만명을 돌파했다. 이 중 조선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8만3000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30%가 넘고 조선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71%로 대다수의 거제시민이 조선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제시는 조선관련 산업이 시 전체 경제활동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대우조선해양이나 삼성중공업 등 대형 조선소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라는 의미다.

대우조선, 삼성중공업은 자구계획안을 제출하고 저마다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조선그룹 기준 816만8000CGT(132척)의 일감을 보유해 현대중공업(834만6000CGT, 191척)에 이어 2위 자리를 유지했다.

대우조선의 수주잔량 중 25.2%인 205만8000CGT는 올해 말까지 인도될 예정이며 2017년에는 이보다 많은 273만2000CGT 규모의 선박이 인도될 예정이다.

이어 2018년 196만2000CGT, 2019년 이후에도 141만6000CGT 규모의 선박이 건조를 마치고 선주들에게 인도된다.

향후 최소 2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는 것이 조선소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우조선의 현재 수주잔량은 타 조선소에 비해 상당한 여유가 있는 편이다.

연평균 270만CGT 규모의 선박을 건조한다고 가정할 경우 대우조선의 2018년 일감은 연평균의 72.7%, 2019년 이후의 일감은 52.4% 수준이다.

▲ 삼성중공업 조선소 전경
올해 극심한 수주가뭄으로 인해 대우조선 역시 수주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당장 올해 수주를 하지 못하더라도 내년부터 적극적인 영업에 나선다면 일감부족에 따른 어려움을 겪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조선업계의 경우 대형 조선소가 없어 경기가 침체된 시기에도 자국 선주 발주 등으로 많지는 않아도 향후 3년 이상의 꾸준한 일감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하지만 경기가 호황일 경우에는 연간 건조 가능한 선박의 한계가 있어 선사들을 한국이나 중국 조선업계에 뺏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이 예전처럼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에 불황 지속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음식점이나 술집이다. 하지만 '개도 돈(지폐)을 물고 다녔다'는 거제. 현재, 거제시에만 숙박업소 220여개, 음식점 3320여개, 학원·교습소 550여개가 영업을 계속 하고 있다.

조선업의 심장, 거제의 밤은 여전히 분주하고 조선소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