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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으로'…대한민국 첫 쇳물 생산 '포항1고로'는?

44년 최장수 용광로, '민족 고로' 별칭...'역사속으로'
1973년 6월 9일 첫 쇳물 생산...'철의 날'로 지정
대한민국 제철역사의 산증인이자 경제발전의 원동력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등록 : 2017-01-11 15:46

"이 제철소는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금으로 받은 조상의 피값으로 짓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합니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지난 1969년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항제철 건설에 나서면서 이같이 밝혔다.

유명한 포스코의 '우향우 정신'이 '민족 고로'라는 별칭을 얻은 우리나라의 첫 현대식 용광로로, 대한민국 경제발전과 포스코의 성장·도약을 함께한 포항 1고로 건설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제철 보국'의 살아있는 역사인 포항제철소 1고로가 이르면 올해 안에 폐쇄된다. 포스코는 내부적으로 포항 1고로 가동을 연내 중단하는 방침을 정하고서 경영진의 최종 의사결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 1973년 6월 8일 화입(고로에 불씨를 지피는 일)한 포항제철소 1고로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사명감'으로 1대기 조업을 시작해 두 번의 개수(改修)를 거쳐 현재 3대기 조업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첫 쇳물 생산...포항제철소의 탄생과 함께 한 44년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소에서는 고 박태준 명예회장(당시 사장)이하 모든 임직원들이 만세를 불렀다. 대한민국 역사상 첫 쇳물이 나오는 순간이다.

포항 1고로가 첫 쇳물을 생산한 1973년 6월 9일을 기념해 지난 2000년 한국철강협회는 철의 날로 제정했다.

포항제철소가 건설되기 전까지 한국 철강산업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종합제철 건설 계획이 구체화된 것은 1961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부터다.

정부는 1967년 6월 연산 3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할 수 있는 지역으로 포항을 낙점했다. 10개월 뒤인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34명의 임직원으로 출범했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당시 사장)은 1968년 대일청구권 자금을 전용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이는 일본으로부터 차관과 기술을 제공받는 방법으로 수정됐다. 일본 정부는 1969년 8월 제3차 한일각료회담에서 종합제철건설 사업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이로써 1970년 4월 1일 연간조강연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했고 착공 3년 3개월만인 1973년 7월 3일 종합준공됐다. 포스코는 이후 네 번의 확장사업을 통해 1983년 조강 910만t 체제의 포항제철소를 완공했다.

포스코는 또한 고도성장기의 급증하는 국내 철강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광양으로 무대를 확장했다. 1985년 광양 1고로 착공을 시작으로 1992년 종합준공식까지 바다를 메워 제선-제강-압연 공정을 직결하는 최신 제철소를 건설한 것.

포스코는 지속적인 설비효율화와 생산성 향상을 통해 1998년 조강생산 기준으로 세계 1위의 철강회사로 발돋움했다. 2000년 민영화 이후엔 해외로 눈을 돌려해 인도네시아, 인도에 등 주요 해외 거점에 생산 설비를 증설하고 있다.

포스코의 실적은 포항제철소 1고로가 처음 가동된 1973년 매출액 416억원, 영업이익 83억원이었고 포항제철소 4기 2차가 완공된 1983년에는 매출액 1조7천500억원, 영업이익 2천720억원을 달성했다.

▲ 1973년 6월 9일. 포항제철소 1고로 첫 출선 당시. 고 박태준 명예회장과 임직원들이 감격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대한민국 제철역사의 산증인이자 경제발전의 원동력

올해로 벌써 준공 44주년을 맞았다.

1973년 6월 8일 화입(고로에 불씨를 지피는 일)한 포항제철소 1고로는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사명감'으로 1대기 조업을 시작해 두 번의 개수(改修)를 거쳐 현재 3대기 조업을 하고 있다.

고로가 수명을 다하면 조업을 중지하고 고로 내부 벽돌(내화물)을 교체하는데, 이를 개수(改修)라고 한다. 보통 개수할 때 내화물은 물론 철피 장식이나 기타 부속 설비가 노후한 것도 교체한다.

포항 1고로는 1973년 조업 시작 이래 두 번의 개수를 거쳐 현재 내용적 1660㎥ 규모로 성장했다.

일반적으로 고로의 평균 수명은 13~15년으로 개수를 마치고 화입(火入)한 후부터 종풍할 때까지의 조업일자를 말한다.

공장 준공 이래 현재까지 약 5000만톤의 용선을 생산했으며 이는 5300여만 대의 자동차와 타이타닉호 크기 선박을 1000석 이상 만들 수 있는 엄청난 양이다.

지난 1993년 2월 3대기 화입 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조업하고 있는 1고로는 현재 휴지(休止) 중인 주물선 고로가 보유한 최장수 고로 기록도 갈아치웠다.

고로는 통상 고열·고압의 환경에 있기 때문에 내화물 마모 등 설비 열화로 15년 이상 수명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포항제철소 1고로는 3대기 조업 시작 후 23년 넘는 현재까지 안정적인 조업을 유지하며 불혹의 나이를 넘긴 국내 최장수 고로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고로의 건강 유지 비결은 포스코 고유의 탄탄한 제선기술 개발과 철저한 설비관리 덕분이며, 장입 최적화·노체(爐體) 열부하 관리 등 포스코만의 특화된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시너지를 높였다.

또한 노체 철피 온도나 열복사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강화해 설비를 첨단화·강건화하는 등 최근 1년간 1고로가 돌발 휴풍(休風) 없이 묵묵하게 쇳물을 생산해온 데에는 직원들의 값진 노력이 숨어있었다.

포항제철소 1고로는 최근 준공되는 대형 고로들과 비교하면 조업 여건상 불리한 측면도 있지만 고도의 제선 조업기술을 바탕으로 설계 생산능력을 훨씬 뛰어넘어 연간 125만t 이상의 쇳물을 꾸준히 생산하며 포스코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정부는 1967년 6월 연산 300만t 규모의 제철소를 건설할 수 있는 지역으로 포항을 낙점했다. 10개월 뒤인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34명의 임직원으로 출범했다. 사진은 포항 1고로 완공시 모습.
포스코인들은 흔히 고로를 사람에 비유한다.

철광석과 코크스라는 음식을 섭취해 소화를 잘 시켜야 하고, 쇳물과 슬래그를 잘 배출시켜야 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의 소화기관과 똑같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배탈 징후가 보이면 주치의인 담당직원들이 온도계·압력계·가스분석계 등 각종 검진장비를 동원해 진단한 뒤 적절한 치료책을 마련하곤 한다.

사람으로 치면 100세가 넘는 나이에 젊은이처럼 쇳물을 생산하고 있는 1고로.

포스코는 1고로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 10개의 용광로를 건설한 것은 물론 차세대 제선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까지 개발할 수 있었다.

지난 2008년에는 1고로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월간 출선비(고로 단위부피당 월 평균 쇳물 생산량)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포항 1고로는 44년 동안 안정적인 조업을 유지하며 민족 고로로서의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 1고로가 대한민국 최장수 고로로 자리매김한 것은 포스코 고유의 탄탄한 제선기술 개발과 설비관리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포항 1고로는 최근 준공되는 대형 고로들과 비교하면 조업 여건상 불리한 측면도 있지만 고도의 제선조업기술을 바탕으로 설계생산능력을 훨씬 뛰어넘으며 연간 125만 톤 이상의 쇳물을 꾸준히 생산해내는 포스코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포스코는 앞으로 4개월 동안 3고로 내부를 기존 3천950㎥에서 5천600㎥까지 늘리는 공사를 진행한다. 이 고로가 완성되면 쇳물생산 능력도 연간 400만t에서 500만t으로 늘어난다.

포스코는 3고로 개수작업을 통해 고로 대형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어서 이 작업이 끝나면 44년간 쉼없이 '산업의 쌀'을 생산해온 '민족 고로', 포항 1고로는 역사속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