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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향한 반복되는 공정위 '칼날'…업계 "억울"

"철근은 가격차별화 어려운 품목"...소송도 불사
"철근시장 특성 이해하지 못한 무리한 결정" 강력 반발

박상효 기자 (s0565@ebn.co.kr)

등록 : 2018-09-14 08:30

국내 철근업계 상위 6곳이 가격 담합을 했다가 역대 가장 큰 1000억원대 과징금을 물게 됐다. 공정위가 조사에 나선 지 2년만이다.

공정위는 1990년대 이후 이번까지 총 5차례에 걸쳐 국내 철근 시장 담합을 적발했으며, 부과 과징금은 이번 적발이 가장 크다. 이에 따라 철강업계가 보호무역과 건설경기 침체 등 대내외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과징금이라는 악재까지 마주하게 됐다.

그러나 해당업체들은 조사 결과가 구체적 물증과 자료를 갖추지 않은 끼워맞추기식인 만큼 행정소송을 통해서라도 억울함을 풀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2015년 5월∼2016년 12월 총 12차례 월별 합의를 통해 물량의 '할인폭'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담합했다고 현대제철 등 국내 6개 제강사를 적발해 과징금 총 1194억원을 부과했다.

업체별 과징금은 현대제철 417억6500만원, 동국제강 302억300만원, 대한제강 73억2500만원, 한국철강 175억1900만원, 와이케이 113억2100만원, 환영철강 113억1700만원이다.

공정위는 또 이들 중 와이케이를 제외한 나머지 5개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철강업계 "철근시장 특성 이해하지 못한 무리한 결정"

공정위의 담합 발표에 대해 철강업계는 철근시장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리한 결정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몇몇 철강업체들은 공정위의 조치를 정밀 검토한 후 이의제기나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 고위 관계자는 "철근 생산구조와 시장 여건을 감안할때 담합이 쉽지 않다"며 "공정위가 시장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담합으로 판단한 것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이들 업체는 향후 소송과정에서 공정위 결정의 부당성을 집중 부각한다는 방침이다.

철강업계는 과징금 부과 자체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철근 시장은 주로 건설사와 거래하는데, 대형 건설사가 가격 협상을 주도하는 상황이어서 철강업체들이 담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A제강사 관계자는 "철근의 경우 1物1價 제품이어서 가격이 비슷하게 책정될 수 밖에 없다"면서 "국내시장 경쟁상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있고 철근의 특성상 나타나는 현상일 뿐 가격담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철강제품 중 중 철근은 가격 차별화가 어려운 품목인데다 판매가격의 원가 대부분이 철스크랩(고철) 가격이고 생산 구조도 단순하고 기술력 차이도 미미한 품목이다.

공정위는 철근가격협의체를 통한 가격 결정 방식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았지만 이를 기반으로 철강사들 간에 별도의 합의가 있었다며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다.

특히 각 사 영업팀장급이 30차례 이상 만나거나 전화 연락으로 가격(할인률 조정)을 담합했다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주장이다.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부분에서 재검토의 여지가 있다는 판단이다.

철강사들은 일단 공정위 결정문을 받아본 뒤 근거의 타당성을 분석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해당 업체들은 공정위가 채택한 증거들이 얼마나 구체적이면서 신빙성이 있는지를 따져 보고 철근 가격을 논의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철근 시장에 대한 이해나 거래 관계에 대한 세부적인 검토 없이 무리하게 담합을 추정했다고 반박할 여지가 있다"며 "공정위가 담합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들은 끼워맞추기식"이라며 그간 조사 과정에서도 담합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왔다고 강조했다.

실제 공정위 발표자료를 보면 기업별 철근 가격 할인폭도 같지 않다. 할인폭을 담합했다고 하지만 정작 공정위 자료를 보면 6개사의 할인폭은 모두 다른 데다 오히려 철근 가격이 하락한 경우도 많다.

철근은 특수제품이 아닌 이상 생산 기술에 거의 차이가 없고 제품 품질도 엇비슷해 경쟁이 치열한 품목이다. 현재 국내 철근 시장은 현대제철이 32.9%, 동국제강이 27.0%로서 1위와 2위 사업자간에 점유율 차이가 10%도 차이나지 않는 경쟁시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점유율이 높은 사업자가 철근 가격을 먼저 결정하면 경쟁사업자는 이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수요가 공략에 나설 것이 불보듯 뻔한 것이 이 바닥"이라고 설명했다.

▲제강사-건자회, 협상이 문제..."폭리 취하는 것도 아닌데~"

철강·건설업계가 단체협상을 통해 철근값을 정하고 있어 태생적으로 담합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다.

건설사와 제강사와의 철근 분쟁은 지난 1990년대 부터 매년 반복돼 왔다. 양 업계간 극단의 이견 차이로 ´철근 공급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발생했다.

오래된 철근 가격 공방의 이유는 ´선구매 후결제 방식´의 가격 시스템 관행 때문이다. 월초 건설사가 한달 사용량을 예상해 제강사로부터 대량 구매하고 결제는 월말에 이뤄지고 있다.

시스템이 이렇다보니 월말에 건설사의 기대 가격이 제강사의 기준가격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매월 건설사는 고시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제강사는 수용불가를 고수하면서 공방은 시작된다.

이는 철근이 품질의 차이가 거의 없어 철저한 1물1가(1物1價)원칙이 적용되는 물품이기 때문. 결국 업체별로 다르게 가격이 결정될 수 밖에 없어 경쟁을 위해서는 타 제강사의 공급가격대로 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후결제 방식을 낳은 것이다.

이에 업계의 반발에도 불구, 정부는 지난 2011년 두 업계간 가격 이견으로 철근거래 중단사태가 반복됐다고 보고 환율, 철스크랩(고철) 등 원가 요소를 반영해 매월 초 철근가격 인상 여부와 폭을 결정하는 가격 협의체를 구성했다.

철근 가격을 분기별로 시장에서 형성되는 기준 가격에 각 제강사별로 서로 다른 할인 폭을 적용해 실제 판매가가 결정되는 구조로 바꾼 것.

가격협의체는 대표제강사(현대제철 또는 동국제강)와 건설사 협의체인 건자회 간 협상을 통해 원재료(고철) 가격 및 시세를 반영해 분기별로 기준 가격을 결정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2016년 말부터 공정위가 담합 조사를 시작하자 단체협상은 중단했고 지금은 제강사 개별적으로 건자회와 협상하고 있다"며" "중국산 저가 철근 수입으로 협상을 통해 정해진 기준가격도 지지하기 힘든 상황이고 할인폭을 담합해도 지켜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철근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상위업체들의 철근가격이 비슷한 수준"이라며 "똑같은 철스크랩을 사용하는 만큼 가격 인상요인도 같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도 "이번 일로 우리 업계가 폭리를 취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상황과 업계 특성을 고려해 시기를 조율한 것 뿐"이라며 "이러한 행위를 일방적으로 담합으로 규정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행위 제재 내용을 담은 의결서는 매출액 집계 등 세부 내용을 검증 후 다음달 6개사에 전달될 예정이다. 철강사들은 의결서와 함께 과징금 고지서를 받으면 과징금을 60일 이내로 납부해야 한다.

또 일단 업체가 과징금 부과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공정위는 이를 검토해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한다.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업체는 고등법원에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패소하면 대법원까지 진행된다.

이 사건에 대해 공정위는 조사를 충분히 진행했고 증거도 확실한 만큼 업체가 이의신청을 접수해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최소한 고등법원 소송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B 제강사 관계자는 "건설사간 협의는 담합이 아니라면서 철강사 담합으로 보는 건 억울하다"며 "공급업체들의 사전협의가 담합행위에 해당하는 만큼, 형평성을 위해 구매업체들의 사전협의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뤄져야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건자회로 협상에 나서 구매 단가를 결정하는 건설업계도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공정위 카르텔조사국 관계자는 "양 업계가 가격협의체를 구성한 만큼 가격 제시 협상을 위한 만남은 담합으로 보지 않았다"며 "시장에서 실제로 합의한 대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총 12차례의 월별 합의를 통해 각 월의 직판향 또는 유통향 물량의 할인폭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한 행위, 그 자체를 담합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철강업체 관계자는 "행위자체가 적발되지도 않았고 공정위가 증거로 제시한 문건이 담합을 명백하게 입증한 것도 아닌데 추정을 통해 몰아가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번 공정위의 철근가격 담합 조사는 지난 2016년 말부터 시작됐다. 당초 시장에서는 철근 기준가격이 도입된 2011년 이후 판매분에 대해 과징금까지 포함돼 이번 담합에 1조원이 넘는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 2011∼14년 판매분에 대해서는 담합의 명확한 증거를 찾기가 어렵다고 판단, 예상보다 담합기간을 짧게 인정하면서 시장이 예측했던 것보다 과징금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