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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초일류 삼성 일구고 세상의 별 되다

  • 송고 2020.10.25 11:14 | 수정 2020.10.25 11:46
  • EBN 손병문 기자 (moon@ebn.co.kr)

2014년 5월 쓰러져 와병 중 향년 78세로 별세

"고인과 유가족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故 이건희 삼성 회장 ⓒ삼성

故 이건희 삼성 회장 ⓒ삼성

국내 재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산업계의 '큰 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지난 2014년 5월 10일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여만이다.


삼성은 이 회장의 사망 소식을 알리며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를 것"이라고 전했다.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했다.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일본 유학을 떠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는 이건희 회장 모습ⓒ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는 이건희 회장 모습ⓒ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 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이 회장은 1993년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경영 및 디자인경영 등으로 대도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고 총자산 500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2006년 TV 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 품목을 일궈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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